이승만 정권은 1950년 12월15일, 군경과 공무원이 아닌 만 17살 이상 40살 이하의 장정은 제2국민병에 편입하고 제2국민병 중 학생이 아닌 자는 지원에 의해 국민방위군에 편입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국민방위군 설치법안’을 상정했고, 다음날 국회는 큰 논란없이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당시 소문으로는 5만명 내지 1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간행의 <민족의 증언>에는 50만명의 대원 중 2할가량이 병사나 아사했다고 돼 있고, 부산일보 간행의 <임시수도 천일>에는 사망자가 5만여명으로 돼 있다. 역사학자 중에서 이승만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영익 교수조차 이 사건을 “9만명가량의 군인이 동사ㆍ아사ㆍ병사한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 국민방위군을 죽음의 대열 혹은 해골의 대열이라 불렀다.
출처: 이론 갤러리 [원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