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갤] 스압) 싱글벙글 근대 유학자들의 민주주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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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싱글벙글 역사

19세기 격변의 시대 동아시아 유학자들은 서양의 민주주의를 단순한 하나의 정치체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유교질서의 충돌/융합 가능성의 관점으로 인식함. 이번엔 한중일 유학자들의 평가를 소개함. 1. 중국 (청나라)

1. 중국 (청나라)

캉유웨이는 저서 "공자개제고"를 통해 유학적 이념을 정당화하면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시도했음. 군주를 헌법 하에 두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했음. 민주주의는 대중이 나라를 어지럽히기 쉽다고 생각하고, 민권은 존중하되 군주의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고 봄.

량치차오는 처음엔 입헌군주제를 지지했으나 이후 군주가 없는 공화제로 기울었음. 다만 중국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면 대중의 소양과 교육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자유보다는 질서가 우선이라고 여김. (이는 중국의 민주주의보다 질서와 안정이 우선이라 여긴 장제스의 "훈정" 체제와 유사함) 민주주의의 이점을 소개하고 대중의 정치 참여는 막을 수 없을것이라 예견하기도 함. 이외에도 장지동 같은 사람들은 정치제도의 민주주의는 거부했지만 서양의 민권 개념은 유용하다고 봄. 서양의 발전 역시 시민의 권리 보장에 있다고 생각한거 2. 한국 (조선) 19세기 말 조선 유학자들은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로 나뉘고 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로 다소 갈림.

량치차오는 처음엔 입헌군주제를 지지했으나 이후 군주가 없는 공화제로 기울었음. 다만 중국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면 대중의 소양과 교육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자유보다는 질서가 우선이라고 여김. (이는 중국의 민주주의보다 질서와 안정이 우선이라 여긴 장제스의 "훈정" 체제와 유사함) 민주주의의 이점을 소개하고 대중의 정치 참여는 막을 수 없을것이라 예견하기도 함.

이외에도 장지동 같은 사람들은 정치제도의 민주주의는 거부했지만 서양의 민권 개념은 유용하다고 봄. 서양의 발전 역시 시민의 권리 보장에 있다고 생각한거

2. 한국 (조선)

19세기 말 조선 유학자들은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로 나뉘고 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로 다소 갈림.

이항로는 민주주의 또는 서양 정치 체제에 직접 언급은 없지만 서양의 문물은 사문난적으로 여겼음. 성리학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상에 적대적이었고, 서양의 법은 금수의 도로 여김.

박규수는 중국 양무운동에서 영향, 서양 문물을 수용하고자 함. 서양의 기술은 수용하되 백성의 정치 참여, 즉 민주주의에는 다소 신중한 태도를 가짐.

유길준은 저서 "서유견문"에서 서양 민주주의, 의회정치, 시민자치를 자세히 서술함. 미영프의 정치를 소개하며 대중과 국가가 함께 정치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함. 시민참여의 정치를 옹호했음.

윤치호는 미국 유학 후 서양 민주주의에 감명 받고 민주주의를 지지함. 군주의 권위보다 백성의 자각과 참여가 중요하다 여기고, "정치는 국민의 권리, 자유는 배워야 지킬 수 있다"라고 주장했음. 다만 현실정치에서 조선은 아직 민주주의에 대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음. 3.일본

요시다 쇼인은 천황에게 충성하고 서양을 반대하는 존왕양이 사상가인데, 그의 사상은 유학에 실천주의 결합으로 볼 수 있음. 에도 막부를 타도하는 근거로 권력은 도덕에 근거해야 하며 백성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근대 민주주의의 저항권과 유사함. 전통적인 유학자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민중의 정치 참여도 긍정했지만 엘리트 위주의 정치를 논함.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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