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생존자다’가 공개되면서, 과거 한국 사회를 뒤흔든 형제복지원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자, 법무부가 “공식 사과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국가배상 판결과 책임 논의, 가해자 박인근과 그 후손의 증언까지 담아내며 사회적 의미를 짚어냅니다.
시즌 2, ‘나는 생존자다’가 다룬 사건들
넷플릭스 ‘나는 생존자다’는 지난해 큰 화제를 모았던 ‘나는 신이다’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총 8부작으로 제작된 이번 시즌은 JMS, 형제복지원, 지존파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참혹한 사건들을 생존자의 시선으로 조명합니다. 특히 1·2화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 운영된 국내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로, 부랑자 단속이라는 명목 아래 3만여 명이 강제 수용되었고, 그 안에서 폭행·강제노역·성폭력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졌습니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사건은 오랫동안 제대로 된 책임 규명과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의 현재와 ‘박인근’의 그림자
작품 속에서는 생존자들이 당시 형제복지원 유니폼을 입고 등장해, 각자의 삶과 이후의 고통을 증언합니다. 주목할 부분은,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의 아들이 카메라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뜻을 내비쳤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박인근이 법적 단죄를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만큼, 국가 책임과 보상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피해자들은 최근 법원에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사건에서는 피해자 승소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5일 자신의 SNS를 통해 “형제복지원·선감학원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사건 관련 상소를 원칙적으로 일괄 취하한다”며, “국가의 잘못된 행위로 깊은 상처를 입으신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정 장관은 “과거 국가가 책임 있는 강제수용·강제노역·가혹행위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음에도, 관행적 상소로 권리 구제를 지연시킨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며 상소 취하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과거 불법행위를 직시하고 사과하며 책임지는 것이 치유와 통합의 출발점”이라며, 국민 인권 보호를 국가의 책무로 강조했습니다.
국가배상 소송 현황과 진실화해위 반응
법무부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피해자 652명이 제기한 111건의 국가배상 소송(1심 71건, 항소심 27건, 상고심 13건)과 선감학원 피해자 377명이 제기한 42건의 소송이 현재 재판 중입니다. 법무부는 앞으로 선고되는 1심 재판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항소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국가가 상소를 포기한 것은 진실규명 취지에 맞는 책임 통감”이라며 환영했습니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이번 결정이 피해자 권리의 신속한 구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나왔습니다.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는 승소 가능성이 없는 사건에도 기계적으로 상소를 반복해 피해자 고통을 지연시켰다”며, “뒤늦었지만 이번 결정이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사회적 파급력: 피해자의 목소리에서 비롯된 변화
이번 시즌은 전작과 달리 자극적 재현을 최소화하고,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덤덤하지만 날카로운 그들의 증언은 단순한 피해 사실 나열을 넘어,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법무부 장관의 공식 사과와 상소 취하, 국가배상 판결 소식, 그리고 사회적 인식 변화까지. ‘나는 생존자다’는 다큐멘터리를 넘어, 피해자들의 현재와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