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앵커가 ‘뉴스룸의 꽃’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드디어 저물고야 만 듯합니다. 각 방송사에서는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 여성 앵커를 단독으로 내세우고, 이들은 중년의 남성 앵커가 도맡았던 당일의 주요 소식들을 전합니다. 금기처럼 여겨졌던 안경을 쓴 채 뉴스를 진행하는가 하면, 임신으로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배를 드러내고 시청자 앞에 서기도 하죠.
한민용 JTBC 앵커의 존재는 그래서 상징적입니다. JTBC 소속 기자인 그는 2018년 〈뉴스룸〉의 주말 앵커로 발탁됐습니다. 무려 4년 3개월 동안 주말 뉴스를 책임지며 ‘JTBC 역대 최장수 주말 앵커’라는 타이틀을 얻었죠. 이듬해에는 평일 〈뉴스룸〉의 첫 여성 메인 앵커라는 수식을 추가했고요. 여성이자 앵커로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진 건 6월 말부터였습니다. 한민용 앵커는 그제야 임신 소식을 전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임신했다고 바로 커리어를 중단하지 않듯 저 또한 평소처럼 뉴스를 하고 있다”라면서요.
당시 그는 “다만 좀 다른 게 있다면, 점점 불러오는 배를 TV를 통해 많은 시청자분들께 보여야 한다는 점”이라며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배 부른 앵커가 낯선 존재인 것도 같다. 사실 저도 점점 변하는 제 모습이 좀 낯설고 어색하다”라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일한 시기 임신 중인 MBC 〈뉴스데스크〉의 김수지 앵커와의 만남도 공개했죠. 두 앵커의 모습은 어떤 이들에게 용기가 됐을 테고, 또 다른 이들에겐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을 겁니다. 출산 직전까지 일을 하는 여성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요즘이지만, 이를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줬으니까요.
한민용 앵커는 1일 〈뉴스룸〉에서 하차했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한껏 부른 배로 단추가 잠기지 않는 재킷을 걸친 그의 클로징 멘트는 이랬습니다. “매일 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뉴스가 필요한 시기에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배부른 앵커를 향해 보내주신 큰 응원과 격려도 감사합니다.”
2년 간 〈뉴스룸〉을 진행하며 적지 않은 기간을 임신 상태로 지냈던 그가 감사의 뜻을 전한 건 응원과 격려를 보낸 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한민용 앵커는 임부복 정장을 만들어주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 물 따주는 것, 원고 정리해주는 것까지 하나하나 옆에서 도와준 JTBC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앵커석에서 내려가는 것보다 동료들을 떠난다는 게 더 서운하다”라고 했습니다. 누구도 간 적 없는 길을 동료들과 함께 걷는다는 건 한민용 앵커에게도 더없이 벅찬 경험이었을 거예요. 휴직에 돌입하며 “지난 13년간 뉴스에 매달려왔는데 한순간에 궤도에서 이탈해버리는 기분”이라고 밝힌 소회는 워킹맘들에게 큰 공감으로 남았을 텐데요. 〈뉴스룸〉을 떠나는 한민용 앵커의 무사 복귀까지 기원하겠습니다.